웰다잉소식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3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삶의 마지막에 대한 의사를 미리 남겼고, 수십만 건의 연명의료 결정이 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청년의사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10년을 맞아 제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다음 10년의 과제를 3회에 걸쳐 짚어봤다.
지난 2016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연명의료결정법은 한국 의료계와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른바 ‘웰다잉법’으로 불린 이 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법 제정 이전에도 연명의료 중단은 의료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었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은 생애말기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연명의료 중단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오랜 논의 끝에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 본격 시행되며 한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냈다. 법 제정 10년, 시행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얼마나 자리 잡았을까. 그리고 환자들이 바랐던 ‘존엄한 죽음’은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300만명이 남긴 삶의 마지막 선택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10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2025년 기준 300만명을 넘어섰다. 제도 시행 초기 수만명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건강한 성인이 향후 임종 과정에 접어들었을 때 어떤 연명의료를 받을지 미리 기록해 두는 제도다.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생애말기 의료에 대한 자신의 뜻을 남길 수 있다.
과거에는 죽음을 미리 준비하거나 가족과 임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가 낯설었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마지막 치료 방향을 스스로 정하려는 국민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연명의료결정법이 단순한 의료제도를 넘어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고령사회가 만든 변화
연명의료결정법이 등장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와 임종 과정의 의료화가 자리하고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기준으로 국내 연간 사망자 수는 지난 1985년 약 24만명에서 2023년 35만명을 넘어섰으며, 2070년대에는 연간 70만명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향후 임종 관련 의료와 돌봄 수요가 현재의 두 배 이상 증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임종을 맞는 장소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사망자의 70% 이상이 병원에서 임종하고 있다. 반면 국민들은 여전히 가정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현실은 생애말기 의료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명의료 중단, 예외 아닌 의료 현장 일상으로
실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이행 건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누적 이행 건수는 45만건에 육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연간 7만건 이상이 이행되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만 해도 의료진과 가족 모두 절차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연명의료 결정 절차가 의료현장에 상당 부분 정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과거에는 환자가 임종기에 접어들어도 명확한 의사 확인없이 치료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 의사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일반화되고 있다. 환자 자기결정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의료현장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절반을 넘어선 자기 결정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후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자기결정 비율의 증가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자료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 결정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가 직접 확인된 비율은 2018년 32.5%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50%를 넘어섰다. 절반 이상의 사례가 환자 스스로의 의사에 기반해 결정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과거 가족 중심으로 이뤄졌던 생애말기 의사결정 구조가 점차 환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환자 스스로 삶의 마지막에 대한 선택을 내리고 그 결정이 실제 의료행위에 반영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추구했던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목표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연명의료는 여전히 늘고 있다
하지만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곧 연명의료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65세 이상 사망자 259만명의 의료이용 기록을 분석한 결과, 2023년 65세 이상 사망자 29만명 가운데 약 67%가 평균 21일 동안 연명의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분석에서 2013~2017년에는 약 55%가 평균 19일 동안 연명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를 받은 환자 수 역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6.4%씩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령 인구 증가와 의료기술 발전 등으로 생애말기 의료 이용 자체도 함께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시술별로는 혈압상승제 투여가 81%로 가장 많았고 수혈 38%, 심폐소생술 30%, 인공호흡기 29% 순으로 나타났다.
환자 의향과 현실 사이 간극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후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환자의 의향과 실제 의료 현장 사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에 인용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되는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쳤다.
이는 적지 않은 환자들이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남기지 못한 채 임종기에 진입하거나 환자의 의사가 실제 의료현장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누적 사례를 보면 여전히 가족 전원의 일치된 진술이나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을 통해 연명의료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치매 환자나 의사 표현 능력을 상실한 고령 환자가 증가하면서 환자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하고 반영할 것인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숫자 너머의 과제
연명의료결정법은 지난 10년 동안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했고 수십만 건의 연명의료 결정이 법적 절차 안에서 이뤄졌다. 과거 의료현장에서 암묵적으로 진행되던 생애말기 결정은 이제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절차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증가가 곧 존엄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의 뜻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지, 고령 환자 증가 속에서 자기결정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생애말기 환자를 위한 돌봄체계는 충분한지 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이다.
실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최근 관련 보고서를 통해 제도 확대와 함께 호스피스·완화의료, 사전돌봄계획(ACP), 지역사회 돌봄체계 구축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는 연명의료결정법을 통해 존엄한 죽음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다음 10년의 과제는 단순히 연명의료를 중단할 것인가를 넘어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돌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곽성순 기자 kss@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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