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은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만 허용
“네덜란드·캐나다식 광범위 모델 수용은 시기상조”
말기·여명 기준부터 독립심사·사회안전망까지 법률에 명시해야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현행 연명의료결정제도로 포괄하지 못하는 말기·비말기 중증질환자의 극심한 고통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조력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제안이 나왔다. 다만 의사조력사를 일반적인 ‘죽을 권리’가 아닌 예외적인 최후의 선택지로 한정하고, 제도를 도입한다면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정하기보다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6일 발간한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 유형과 국내 입법의 방향성 검토’ 보고서에서 “현행 연명의료중단제도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중심으로 설계돼 비말기 중증질환자가 겪는 지속적이고 극심한 고통과 삶의 마무리에 관한 요구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고 있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혈압상승제 등 생명유지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적용 시점이 ‘임종과정’으로 제한되고 허용 행위도 연명의료의 유보·중단에 한정된다. 아직 임종기에 들어섰다고 판단하기 어렵지만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고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는 중증질환자는 제도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의사조력사는 의사가 치사약을 처방·제공하거나 복용 방법을 안내하고, 환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해 생을 마감하는 방식이다. 생명유지치료를 중단하는 연명의료결정과 달리 생명 단축을 직접적인 결과로 한다는 점에서 법적·윤리적 성격이 다르다. 현행법상 의사의 조력 행위는 형법 제252조의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
보고서는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를 크게 4개 유형으로 구분했다.
미국 오리건주처럼 여명 6개월 안팎의 말기환자에게 자기복용 방식만 허용하는 ‘말기환자 한정형’, 네덜란드·벨기에처럼 환자의 자기복용과 의사의 직접 투약을 모두 허용하는 ‘포괄형’, 캐나다·호주처럼 조력사망을 의료체계 안에서 통합 관리하는 ‘의료적 조력사망형’, 스위스·독일처럼 형법과 판례, 민간단체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특수 허용형’이다.
허용 범위가 넓은 국가에서는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2024년 안락사 보고에는 치매 관련 사례 427건과 정신질환 관련 사례 219건이 포함됐다. 캐나다도 2021년 법 개정을 통해 자연사가 임박하지 않은 비말기 중증질환자와 장애인까지 대상을 확대했다.입법조사처는 네덜란드나 캐나다처럼 대상 범위가 넓은 모델을 한국 사회가 곧바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우선 말기환자에게만 자기복용형 의사조력사를 허용하는 방안과 현행 연명의료중단제도의 적용 대상을 정교하게 확대하는 방안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제22대 국회에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법안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대상자 결정을 신청하고, 대상자로 결정된 날부터 1개월이 지난 뒤 담당 의사와 전문의 2명에게 다시 의사를 표시하면 조력존엄사를 이행할 수 있도록 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력한 담당 의사에게는 자살방조죄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도 담겼다.
입법조사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연명의료결정법에 일부 조항을 추가하기보다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이 법체계상 설득력이 크다고 봤다. 연명의료 중단은 치료를 멈추는 소극적인 결정이지만, 의사조력사는 원칙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인 적극적 생명단축 행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별법에는 대상 질환과 여명, 환자의 의사결정능력, 반복적인 요청과 숙려기간, 복수 의료인의 판단, 독립 심사, 완화의료 제공 여부, 사후 보고·감독 등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적법한 조력 행위에 대한 형사·민사·행정상 면책 범위와 종교·윤리적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는 의료인의 권리도 함께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조력사망 논의에 앞서 돌봄과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 가족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통증 조절과 완화의료, 심리·사회적 지원,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이는 서비스와 소득·주거·의료비 지원이 충분히 보장된 뒤에도 본인이 숙고 끝에 선택을 원하는 경우에만 의사조력사를 마지막 수단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훈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기사원문 보러가기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52514?ref=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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