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김대균의 아름다운 배웅, 따뜻한 동행] ⑧ 죽음 배우는 교실에서 삶을 묻다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우리 사회는 연명의료결정제도와 통합돌봄을 통해 삶의 마지막까지 환자의 뜻과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최근 정부가 요양병원 환자분류 기준에서 콧줄을 통한 영양공급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불필요한 처치를 줄이기 위한 변화다.
그러나 수가 기준 하나를 바꾼다고 환자 중심의 돌봄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수가 때문에 콧줄을 넣었다면 이제는 수가 때문에 넣지 않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일률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환자 상태와 뜻, 치료가 줄 이익과 고통을 충분히 살펴 함께 결정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의료진의 교육뿐 아니라 환자와 가족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는 병원에서만 시작될 수 없다. 죽음을 낯설고 두려운 금기로 밀어두면 막상 이별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기계와 숫자에 결정을 맡기기 쉽다. 학교에서 죽음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죽음을 말하면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 교육은 공포나 절망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지금의 관계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상실을 겪는 친구와 이웃에게 손 내미는 법을 배우는 삶의 교육이다. 정답을 주입하기보다 서로 다른 삶과 죽음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를 익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배움은 가족과의 대화로도 이어진다.
인천에서는 지난해부터 고등학생 대상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Before I Die)”을 나누며 죽음이라는 매개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열렬히 고백했다. 처음에는 죽음을 ‘끝’이나 ‘두려움’으로만 표현하던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뒤에는 ‘성찰’과 ‘삶의 가치’를 얘기했다. 죽음의 이미지는 그렇게 두려움에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언어로 바뀌었다.
입시도 중요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상실을 이해하고 아픈 가족의 선택을 존중하며 슬픔에 빠진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힘도 학교가 길러야 할 중요한 역량이다. 법과 제도가 존엄한 마무리의 틀을 만든다면, 교육은 그 틀을 따뜻하게 채울 사람을 키운다. 죽음을 배우는 교실은 삶을 포기하는 곳이 아니라 오늘을 더 충실히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는 곳이다. ‘배웅하는 사회’의 첫걸음은 어쩌면 바로 그 교실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권역별호스피스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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