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질환 환자를 간병하는 보호자와 의료진은 연명의료 결정 시기를 두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현행 제도상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이 유지될 때는 연명의료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임종 직전에야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보호자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연명의료결정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을 갖고 있을 때 치료 목표와 생애 말기 돌봄을 미리 논의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앞당기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그 시기를 어떻게 정하고 적용할 것인지가 현장의 과제로 남아 있다.
◇‘중단 시점’과 ‘계획서 작성 시점’은 달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최근 제7기 위원회 제1차 정기회의에서 연명의료결정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주요 개선 검토 과제 중 하나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점을 현재의 ‘말기 또는 임종과정’에서 ‘말기가 예견되는 시점’으로 앞당기는 방안이다.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말기 환자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연명의료를 실제로 유보·중단하는 ‘이행 시점’과, 환자가 자신의 뜻을 서류로 남기는 ‘작성 시점’은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별개의 개념이다.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말기 이전에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취지”라며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을 미리 준비하는 시기와 이를 실제로 이행하는 시기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기가 예견되는 환자’ 모호… 구체적 기준 필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점을 앞당기는 것의 필요성에는 의료계도 공감하고 있다. 그동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미리 작성하지 않은 말기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임종을 앞두고 늘 힘든 선택과 마주해왔다.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같은 연명의료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의 연명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환자의 평소 뜻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보호자에게 돌아간다.의료진의 부담도 컸다. 환자가 말기 상태라는 판단과 별개로 실제로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을 충족했는지, 환자가 생전에 어떤 치료를 원했는지 명확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와 가족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임종이 가까워진 뒤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의료진 역시 선뜻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말기 이전,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있을 때 치료 방향을 논의해 두면, 향후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보호자나 의료진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다만 검토 방향으로 언급되는 ‘말기가 예견되는 시점’을 어떻게 판단할지가 과제로 남는다. 병의 진행 과정이 비교적 일정한 암과 달리 심부전, 만성폐질환, 간질환, 신장질환 등 비암성 만성질환은 질병 경과가 매우 다양하다. 특정 시점을 말기로 단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대균 센터장은 “특히 비암성 만성질환은 말기 여부와 예후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질환별 임상적 기준과 구체적인 적용 지침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도 질환별 말기 판단 기준은 존재하지만, 이를 임상 현장에서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법적·행정적 절차는 미비하다. 연세암병원 가정의학과 박중철 교수는 “어떤 환자가, 어떤 연명의료를 받고 있을 때 변경 사항이 적용되는지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제시돼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안을 개정할 때 ‘말기가 예견되는 환자’의 정의를 ‘질병 경과, 중증도, 통상적인 임상 경과를 고려해 향후 말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 등으로 한층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 등의 방법이 거론된다.
◇서류 한 장보다 중요한 ‘사전돌봄계획’
이번 제도 개선을 단순히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점을 앞당기는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환자가 질병의 경과에 따라 자신의 치료 목표와 돌봄에 대한 생각을 반복적으로 논의하는 구조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전돌봄계획(ACP·Advance Care Planning)’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ACP는 환자가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원하는 치료와 돌봄 방식을 의료진·가족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질병 경과에 따라 이를 재확인하며 수정해 나가는 절차다.김대균 센터장은 “ACP를 통해 환자가 원하는 치료와 돌봄의 목표를 미리 논의하는 과정이 정착되면, 연명의료 결정과 호스피스를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인식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의료 현장에서는 완화의료와 호스피스가 ‘연명의료 중단 결정 후 임종을 맞으러 가는 곳’이라는 낙인 효과로 기피 대상이 되는 실정이다. 질병 초기 단계부터 통증과 심리·사회적 돌봄을 병행하는 ‘조기 통합 완화의료’와 ACP 제도가 정착돼야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고 전체적인 말기 돌봄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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