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봄날에 만난 사람들
3월 23일(일) 순복음강남교회(담임목사 이장균)로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습니다. 모두가 쉬는 일요일이지만 오히려 더 바쁘게 움직이는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전날, 친구 아들 결혼식이 있어 지방에 다녀온 터라 조금 몸은 피곤했지만 만날 분들을 생각하니 기운이 쑤~욱 올라왔습니다.
강남역을 지나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며칠 전 박주택 상담사가 찾아오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지만, 선천적 길치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사람처럼 늘 헤매는 사람이기에 교회를 못찾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제 별명이 한 때 인간나비였습니다. ‘네비’가 아니라 ‘나비’...). 네ㅇㅇ 길찾기 프로그램을 열고 열심히 따라가 봅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이구야 나비로구나!!
가까스로 약속한 시간에 맞춰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을 지나 1층 로비에 들어선 순간 왁자지껄 활기찬 움직임과 소리가 넓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로비 입구에서 정면으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을 알리는 배너가 서 있습니다. 찾아가는 상담실 현수막이 붙여진 곳, 상담 테이블에 앉아 있는 김미숙 상담사를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나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을 발견할 때의 기쁨이라니, 너무 반가운 얼굴입니다. 마침 예배를 마치고 나온 박주택 상담사(박주택 상담사는 순복음강남교회 장로입니다), 김인환 상담사, 양숙희 상담사를 만납니다. 제 편이 생긴 아이처럼 갑자기 힘이 나고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김미숙 상담사 등은 바로 방문하신 교인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루, 순복음강남교회 생명위기예방상담팀(이하 생명상담팀)의 의향서 상담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생명’-‘위기’-‘예방’-‘상담’
박주택 상담사의 안내로 교회 본당 건너편 생명위기예방상담팀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이동했습니다. 짧은 거리 이동이었지만 가는 길마다 교인들의 인사가 계속됩니다. 4층 사무실로 들어섰습니다. 박정현 상담사, 이동규 상담사 얼굴이 보입니다. 어렴풋이 2023년 가을 9기 상담사양성교육 때 만났던 기억이 났습니다. 박주택 상담사의 추천으로 생명상담팀에서 5명 교육생이 참여했기에 더욱 특별했던 거 같습니다.
박주택 상담사가 서류 한 뭉치를 갖고 왔습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민간 서식 의향서를 작성했던 분들의 명단과 상담일지 등이 묶여 있는 서류철이었습니다. 상담일지를 보니 마치 역사적 유물을 보는 듯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생명상담팀의 역사를 넘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역사를 알려 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서류를 통해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상담팀을 단박에 엿볼 수 있었기에 천천히 사무실의 게시판이나 서류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조직도를 비롯하여 중요한 활동을 알 수 있는 신문보도자료 원본(2017년 사실모와의 업무협약식 관련 자료도 있습니다), 자살예방 상담사 자격인증서 등 각종 자격증, 생명상담팀의 목표 및 구호 등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방문 전 순복음강남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생명상담팀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주요활동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요활동과 관련한 만성위기예방지도사(일반자살예방) 2급 자격증 등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주요활동>
•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웰다잉 상담
• 사전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 사전치매의향서 작성
• 우울증 및 치매검사
• 성격선호도(MBTI) 검사
• 요양원, 경로당 방문 상담 및 림프, 이ㆍ미용 봉사
• “소리(聽)” 주간소식지 매 주일 발간
생명상담팀은 순복음강남교회와 강남동산교회 찾아가는 상담 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활동 뿐 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로비 상담 테이블에서 MBTI검사 신청 안내문을 본 듯 합니다. 잠깐, 생명상담팀 이름을 차근차근 읊조리며 되뇌어 봅니다. ‘생명’-‘위기’-‘예방’-‘상담’이라는 단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 생명상담팀의 역할과 활동의 의미를 알 듯 합니다.
잠시 후 생명상담팀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로비에서 상담 활동을 했던 김미숙 김인환 양숙희 상담사도 모였습니다. 예배 후 교회 식당으로 갔습니다. 점심식사 반찬으로 나온 구수한 아욱국과 이면수 튀김이 참 맛있습니다. 박주택 상담사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참 화기애애합니다. 가족같습니다.
생명위기예방상담팀 이야기
현재 생명상담팀에서는 총 9명의 상담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주택 상담사를 팀장으로 하여 김미숙 김인실 김인환 김진만 박정현 송기태 양숙희 이동규 상담사입니다. 아쉽게도 김인실 송기태 두 상담사는 건강 문제로 이날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 중에서 김인환 - 박정현 상담사와 양숙희 - 이동규 상담사는 부부 상담사입니다. 그리고 김미숙 상담사는 인근 성당 신자인데 주일에는 교회에서 상담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실모 상담사양성교육에서 선배 상담사로서 박주택 상담사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김미숙 부장(6기) - 사실모상담사로서 누구보다 삶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의 내 모습은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없으나 나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후의 내 생의 마지막 모습은 분명 아름다운 내 삶의 한 장면일 것입니다. 늘 기억하자. 메멘토모리, 까르페디엠, 아모르파티...
• 김인환 부장(9기) - 상담하는 일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죽음관이 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죽음을 주제로 대화하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유산 상속 문제를 정리하게 되었고, 가족과 죽음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상담자가 오히려 내담자에게 삶의 교훈을 받는 경우도 많았던 거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상담하고 있습니다.
• 박정현 부장(9기)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철학적 실천이라는 점을 매번 새삼 느낍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설 때면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아있는 현재의 시간을 더 충실히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주셔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저 또한 제 자신의 삶에 대해 매순간 더욱더 진지해지는것 같습니다.
• 송기태 부장(9기) - 아직도 의향서 작성에 대해 의문점을 많이 가집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잘해 드려도 처음에는 망설이시다가 의향서를 작성하신 후에는 잘한 것 같다', '마음이 편해졌다'는 어르신들을 뵈면 보람을 느낍니다.
• 양숙희 부장(9기) - 찾아가는 상담소(미용실)를 통하여 상담하고 난 뒤 감사하다고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홍보가 되어 미용실에서 문의가 계속되어 보람차게 상담하고 있습니다. ^^
• 이동규 부장(9기) - 바쁜 시간을 짬을 내어 상담하고 있는데 저는 주로 강원도 문막에서 상담하였고 시골에는 대부분 어디서 작성하는지를 잘 모르신 분들이 많아서 매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순복음강남교회 홈페이지에는 생명위기예방상담팀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위기예방상담팀은 자살충동에 사로 잡혀 있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죽음의 공포에 억눌린 성도와 이웃주민을 위하여 위로자, 격려자, 상담자가 되려고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
순복음강남교회 생명상담팀은 사실모와 제휴하여 교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 등 2018년부터 지금까지 1,400여명을 작성하였습니다. 2025년 올해, 생명위기예방상담팀은 인근 지역 경로당을 방문하여 백년나무 그리기 등 간단한 웰다잉교육과 의향서 상담을 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어른 박주택', 기준을 세우다
식사 후 좀 더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사무실로 돌아가 박주택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주택 상담사는 본래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속 장로였습니다. 그는 어느날 오랜 신앙생활을 해 온, 심지어 장로 직분을 갖고 있는 교인들까지 자살하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살예방에 관심을 갖고 생명위기예방상담팀을 만들어 운영합니다. 2003년 중등학교 교장을 퇴임하고, 2007년 박기종 목사의 권유로 각당복지재단의 죽음준비교육지도자 1기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는 웰다잉교육 이전에는 죽음이 무서웠으나 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잉태된 생명이 해산하는 순간 죽음도 같이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도 합니다”라고요.
박주택 상담사는 이후 웰다잉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박 상담사는 청주노인복지관에서의 유언장 작성 교육을 기억나는 강의로 꼽았습니다. 180cm 장신의 60대 중반의 남성 이야기입니다. 유언장을 작성하기 전 그는 성질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육 후 작성한 유언장을 읽으면서 그는 폭풍같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처자식에게 미안합니다. 잘못 살아왔습니다.” 그는 훗날 웰다잉강사가 되었습니다.
순복음강남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독립된 교회로, 이 교회에 소속한 박주택 상담사는 2014년 1월 생명위기예방상담소 창립예배를 드리고 초대 소장으로 취임합니다. 그는 웰다잉교육, 수원연화장 및 벽제 등 장묘 견학, 만성위기예방지도사 교육(국민대학교 평생교육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시범사업 참여, 사실모의 MOU와 찾아가는 상담실 운영 등 다양한 일들을 해나갔습니다. 2019년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호스피스의 날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박주택 상담사를 인터뷰하는 중 잠시 쉬는 시간, 사무실에 함께 있던 박정현 상담사에게 박 상담사가 어떤 분이신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의욕이 앞서거나 길을 벗어날 수 있는데, 장로님께서 기준을 잡아 주셨어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박 상담사의 말을 듣자 2023년 초 TV에서 방영했던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습니다. 물론 김장하 선생과 박주택 상담사의 삶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후배들에게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준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8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에도 그는 사실모에서 상담 요청이 있을 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든지, 기꺼이, 길에 나섭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리자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준비하고 노력한 것만큼 결과가 나온다”라는 짧지만 강하게 답하는 박주택 상담사를 보면서 ‘어른 박주택’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명존중, 웰다잉을 위한 교회의 역할
최근 상담을 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했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의향서등록을 했다고 하자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상담을 신청한 분이었습니다. 의향서 내용을 설명하는 중간중간에 말을 끊고 질문을 하다가 설명이 끝나자 “의향서 작성이 자살 아닌가요?”라고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듣는 질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질문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과연 기계장치나 약물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모 뉴스레터에 있는 생명상담팀 활동 소식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내담자는 교회의 자문도 구하면서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오겠다고 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이 사례를 박주택 상담사에게 전하면서 의견을 구해 보았습니다. 박 상담사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에서 웰다잉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교육을 하더라도 강의제목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거부감이 크기에 다른 제목으로 바꾸는 사례도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복음강남교회의 위기생명예방상담팀 운영은 매우 이례적이면서 생명문화, 웰다잉을 위해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박 상담사는 교회에 웰다잉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교회의 관심과 이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순복음강남교회 위기생명예방상담팀 방문은 생명문화 웰다잉에 대한 교회의 역할과 리더십, 팀워크, 그리고 상담사들의 헌신을 확인한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교회 일정 속에서도 친절하게 맞이해 주신 생명상담팀 여러분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어른들의 봄날 소풍, 폭싹 속았수다
3월 25일(화) 화성 사회적협동조합 열린공동체 다원과의 업무협약식이 있었습니다. 홍양희 공동대표가 사무국을 대표해서 화성으로 내려갔습니다. 최근 몸이 부쩍 쇠약해진 듯한 홍 대표가 걱정되었습니다. 동행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자 홍 대표가 답합니다. “이기선 선생님, 박주택 선생님과 같이 가요. 봄날 소풍처럼 잘 다녀올께요. 걱정마세요.”
2007년 각당복지재단 죽음준비교육지도자과정 1기부터 홍 대표와 인연을 맺은 이후 상담사로서, 웰다잉강사로서 한결같이 사실모를 지켜 온 박주택 선생님, 90세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상담사로 화성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이기선 선생님, 그리고 사실모 자체인 홍양희 공동대표, 이 세 어른들의 봄날 소풍이 눈 앞에 그려집니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 선배 상담사와 함께 한 송년모임에 참석하셨던 선생님들 얼굴도 스쳐 지나갑니다. 까마득한 후배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기준이 되어 주신 어른 상담사 선생님들이 계셔서 사실모는 든든합니다, 행복합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제목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선생님들, 폭싹 속았수다.
순복음강남교회 생명위기예방상담팀 상담사 명단(괄호 안은 사실모 상담사양성교육 기수)
박주택 팀장 김미숙(6) 김인실 김인환(9) 김진만(12) 박정현(9) 송기태(9) 양숙희(9) 이동규(9)
상담시간 : 매주 일요일, 오전 8시15분 ~ 오후 2시 15분 / 매주 수, 오전 10시 ~ 오후 2시
상담실위치 : 순복음강남교회 선교비전센터 4층
상담전화 ☎️ 02-538-4240, 070-426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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